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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도 없이 대만을 선택한 박선주(JJUBI): 자발적 응원부터 취업 과정의 상처, 그리고 직접 두드린 기회의 문까지

대만 프로야구에 한국인 치어리더 열풍이 불던 시기, 박선주(JJUBI)는 구단 계약도 없이 대만에 남아 새로운 기회를 찾았다. 직접 중국어를 배우고, 야구장에서 응원하며, 불확실한 미래를 견뎠다. 일자리를 소개해 주겠다는 사람들에게 실망하기도 했지만, 결국 중신 브라더스 Passion Sisters의 매니저에게 직접 연락해 면담 기회를 얻었고 2025년 정식 합류했다. 2026년 6월에는 급성 충수염으로 활동을 중단해야 했다. 그녀의 이야기는 단순한 해외 진출 성공담이 아니라, 낯선 나라에서 자신의 삶과 직업을 다시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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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 2026년 10월 16일

2025년 2월, 대만 타이베이돔에서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예선이 열리고 있었다.

대만 대표팀을 응원하는 관중들의 함성이 경기장을 가득 채운 가운데, 관중석에는 조금 특별한 인물이 있었다.

그녀는 당시 대만 프로야구 구단에 정식 소속된 치어리더가 아니었다.

대만 구단과 체결한 정식 활동 계약도 없었다.

한국에서 온 박선주, 활동명 JJUBI였다.

박선주는 이미 한국 프로야구에서 치어리더로 활동한 경험이 있었고, 프로스포츠 응원 문화에도 익숙했다.

하지만 당시 대만에서 그녀에게는 아직 공식적인 무대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경기장을 찾아 대만 대표팀 응원에 참여했다.

팬들이 촬영한 영상에 남아 있는 이 장면은 이후 그녀의 대만 생활을 돌아볼 때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때 박선주는 자신이 대만에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지조차 확신하지 못했다.

확정된 계약도, 구체적인 활동 일정도 없었다.

다음에 언제 정식 치어리더로 무대에 설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대만에 남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바로 여기서 박선주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대만 프로야구에서 한국인 치어리더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많은 이들이 구단의 초청이나 매니지먼트 계약을 통해 대만으로 향했다.

하지만 박선주가 걸어온 길은 조금 달랐다.

그녀는 먼저 대만으로 왔다.

직접 생활을 준비하고, 중국어 학원에 등록하고, 일자리를 찾아다녔다.

기다림에 지치기도 했고, 믿기 어려운 일자리 소개에 상처받기도 했다.

친구들이 하나둘 기회를 얻는 동안 자신에게는 왜 제안이 오지 않는지 고민하기도 했다.

결국 그녀는 직접 편지를 보내 중신 브라더스 Passion Sisters의 매니저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2025년 7월, 그녀는 마침내 중신 브라더스의 정식 치어리더가 됐다.

하지만 시련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2026년 6월에는 갑작스러운 급성 충수염으로 활동을 중단해야 했고, 오랫동안 준비했던 개인 무대도 취소됐다.

계약 없는 기다림에서 정식 입단까지.

그리고 건강 문제를 겪은 뒤 다시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기까지.

박선주의 대만 생활은 화려한 응원 사진 한 장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다.

그녀는 단순히 대만에서 인기를 얻으려 했던 한국인 치어리더가 아니다.

익숙한 삶의 방향을 바꾸고, 낯선 나라에서 자신의 다음 기회를 찾아 나선 직업인이다.

1. 처음부터 치어리더를 꿈꿨던 것은 아니었다

박선주는 1997년 1월 29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부산대학교에서 생물환경에너지 관련 분야를 공부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떠올리는 직업 치어리더의 진로와는 다소 다른 배경이다.

2026년 9월 대만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자신의 초기 직장 생활을 돌아봤다.

대학 졸업 후 서울로 올라가 건설회사에서 약 2~3개월 동안 근무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직장 문화에 적응하기 어려웠고, 정해진 시간에 사무실에서 일하는 생활도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

결국 그녀는 회사를 떠났다.

그것은 처음부터 다음 직업이 확정된 상태에서 내린 결정이 아니었다.

기존의 진로를 포기한다는 것은 자신이 정말 무엇을 하고 싶은지 다시 찾아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때 그녀가 떠올린 것은 학창 시절부터 좋아했던 춤이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 댄스 동아리에서 활동했고, 동아리 회장을 맡기도 했다.

선배의 소개를 통해 프로스포츠 응원 활동을 접한 그녀는 점차 치어리더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한국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와 NC 다이노스를 비롯해 여러 프로스포츠 현장에서 응원 활동을 경험했다.

서로 다른 종목에서 활동한다는 것은 단순히 유니폼을 갈아입는 일이 아니다.

야구는 아홉 이닝에 걸쳐 경기가 진행되고, 타자의 등장이나 공수 교대, 경기 상황에 맞춰 응원의 흐름이 달라진다.

농구는 작전시간과 쿼터 사이의 공연 시간이 짧고, 빠른 전환과 집중력이 요구된다.

구단마다 응원가와 팬 문화, 현장 운영 방식도 다르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박선주는 대만에 오기 전부터 여러 해 동안 프로스포츠 현장에서 일한 경력을 쌓았다.

하지만 경험이 있다고 해서 새로운 나라에서의 취업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쌓은 경력이 곧바로 대만 구단과의 계약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2. 2023년의 짧은 방문에서 대만 정착이라는 선택까지

박선주와 대만 야구의 인연은 Passion Sisters에 정식 합류하기 전부터 시작됐다.

2026년 9월 인터뷰에 따르면, 그녀는 2023년 8월 NC 다이노스에서 활동하던 시절 이아영과 함께 중신 브라더스의 테마 이벤트에 초청받아 대만을 방문했다.

당시에는 단기 해외 행사였다.

대만에 장기간 거주할 것인지 결정할 필요도 없었고, 계약 없이 생활해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할 상황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경험은 대만 프로야구의 현장 문화를 접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대만에서는 한국인 치어리더 시장이 빠르게 확대됐다.

한국의 응원 문화와 대만 프로야구가 결합하면서 한국인 치어리더는 구단 마케팅의 중요한 화제가 됐다.

점점 더 많은 한국인 치어리더가 정식 초청을 받고 대만에서 새로운 활동을 시작했다.

박선주 역시 대만에서 일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곧바로 구단의 제안이 오지 않았다.

그때 그녀는 선택해야 했다.

한국에서 계속 기회를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먼저 대만으로 가서 가능성을 찾아볼 것인가.

그녀는 두 번째 길을 선택했다.

2025년, 정식 구단 계약이 없는 상태에서도 대만에 머물기로 결정했다.

겉으로 보면 낭만적인 선택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상당한 불확실성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거주지와 생활비, 교통과 일상생활을 스스로 준비해야 했다.

무엇보다 언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현장 공연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에게 정기적인 활동 일정이 없다는 것은 수입과 경력 모두 불안정하다는 의미다.

그녀는 일자리가 확정된 뒤 대만에 온 것이 아니었다.

먼저 대만을 선택한 뒤, 그곳에서 계속 일할 수 있는 무대를 찾으려 했다.

3. 계약이 없던 시절, 그녀는 먼저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대만에서 일자리를 기다리는 동안 박선주는 중국어 학원에 등록했다.

겉으로는 대만 생활에 적응하기 위한 선택처럼 보인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을 생각하면 더 큰 의미가 있다.

그녀는 이미 구단에 입단해 회사가 제공하는 언어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

대만에서 계속 일할 수 있을지조차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스스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중국어를 배웠다.

중국어는 단순히 경기장에서 팬들에게 인사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었다.

낯선 나라에서 독립적으로 생활하기 위한 능력이기도 했다.

집을 구하고, 교통수단을 이용하고, 물건을 사고, 병원에 가고, 업무 관계자와 소통하는 일 모두 언어와 연결된다.

어떤 제안이 믿을 만한 것인지 판단하는 데에도 언어 능력은 중요하다.

익숙하지 않은 나라에서 언어가 통하지 않으면 일상적인 상황에서도 주도권을 잃기 쉽다.

따라서 박선주의 중국어 공부를 단순히 '대만 팬들을 위해 열심히 중국어를 배운다'는 미담으로만 설명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기 위한 준비였다.

2026년 9월 인터뷰에서 그녀는 중국어로 진행되는 대화의 대부분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혼자 지하철과 고속철도를 이용할 수 있고, 대만인 동료들과도 중국어로 소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자신의 대만 생활 적응 정도에 80점을 줬다.

남은 20점은 특히 중국어 실력에서 더 발전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이 대답은 흥미롭다.

그녀는 자신이 대만에 완전히 적응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전히 배워야 할 것이 있다고 인정했다.

처음에는 기본적인 의사소통조차 쉽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혼자 생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됐다.

그리고 그 노력은 중신 브라더스에 정식 입단하기 전부터 시작됐다.

4. '야생 응원': 무대가 없어도 야구장으로 향했다

2025년 2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예선은 박선주의 대만 생활에서 기억할 만한 장면이다.

당시 그녀는 대만 프로야구 구단의 정식 치어리더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팬들이 촬영한 영상에는 그녀가 타이베이돔에서 대만 대표팀 응원에 참여하는 모습이 남아 있다.

일부 팬들은 이러한 활동을 '야생 응원'이라고 표현했다.

정식 구단 소속이 아닌 상태에서도 야구 응원 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의미다.

다만 공개 영상만으로 그녀가 모든 경기에 개인 비용을 들여 참석했다거나, 어떠한 행사 관계자의 초청도 받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 장면의 상징성은 분명하다.

그녀는 아직 대만 프로야구에서 공식적인 일자리를 얻지 못했지만, 이미 그 산업과 팬 문화에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이러한 행동이 곧바로 계약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구단은 치어리더를 선발할 때 팀 구성과 행사 운영, 예산, 매니지먼트 체계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한다.

팬들에게 알려졌다는 이유만으로 반드시 채용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박선주에게 야구장을 찾는 일은 자신이 좋아하는 응원 활동을 계속 이어가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구단 유니폼을 입고 정해진 무대에 서는 동안, 그녀는 아직 자신의 자리를 찾고 있었다.

다음 공식 공연이 언제 열릴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야구장을 완전히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중에 Passion Sisters에 정식 합류한 이야기는 더욱 특별해진다.

그녀가 대만 야구를 알게 된 것은 계약서에 서명한 날부터가 아니었다.

그 이전부터 이미 그 문화의 일부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5. 친구들은 기회를 얻는데, 왜 나에게는 제안이 오지 않을까

대만에서 일자리를 기다리는 동안 박선주는 상당한 좌절감을 느꼈다.

친구 김나연은 이미 대만에서 활동할 기회를 얻었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새로운 무대를 찾아가는 동안 자신에게는 정식 계약 제안이 오지 않았다.

2025년 7월 대만 언론 보도에 따르면, 박선주는 나중에 Passion Sisters의 매니저인 '과이제(乖姐)'에게 당시의 심정을 털어놓았다.

친구가 성공하는 것은 기뻤지만, 자신은 왜 계속 기회를 얻지 못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 감정은 단순한 실직 상태보다 복잡했을 것이다.

그녀에게는 이미 한국 프로스포츠 현장에서 쌓은 경력이 있었다.

해외 행사 경험도 있었다.

노력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대만에 와서 생활을 준비했고, 중국어를 배우며 일자리를 찾았다.

하지만 노력한다고 반드시 즉각적인 보상을 받는 것은 아니다.

특히 공연 산업에서는 개인의 능력 외에도 많은 요소가 채용을 좌우한다.

구단의 인원 구성, 매니지먼트 계약, 상업적 전략, 행사 일정, 팀 이미지에 대한 판단 등이 모두 영향을 미친다.

실력이 있는 사람이라도 당시의 수요와 맞지 않으면 기회를 얻지 못할 수 있다.

박선주가 마주한 현실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녀는 춤을 연습할 수 있었다.

중국어를 배울 수 있었다.

대만 팬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구단이 언제 자신에게 기회를 줄지는 결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가 직접 편지를 보내 면담을 요청한 행동은 더욱 중요하다.

그것은 누군가 자신을 발견해 주기만 기다리는 태도에서 벗어났다는 의미였다.

6. 대만에서 겪은 실망: 일자리 소개를 빌미로 한 부적절한 만남

일자리를 찾는 과정에서 박선주는 불편하고 실망스러운 인간관계도 경험했다.

2025년 7월 대만 언론 보도에 따르면, Passion Sisters의 매니저 과이제는 박선주에게 들은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전했다.

박선주는 한 여성 온라인 콘텐츠 제작자를 알게 됐고, 처음에는 함께 영상을 촬영하자는 제안을 받곤 했다.

그러나 이후에는 파티나 다른 사교 모임에 참석하라는 초대가 이어졌다.

당시 박선주는 중국어에 익숙하지 않았고, 모임에 참석한 다른 사람들도 잘 알지 못했다.

그녀는 이러한 초대가 원래 기대했던 업무 협력과 다르다고 느끼고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과이제는 또 다른 사람들도 일자리를 소개해 주겠다며 접근했지만, 실제로는 사적인 만남을 원했던 경우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경험은 박선주에게 속았다는 느낌과 상처를 남겼다.

다만 여기서는 '속았다고 느낀 경험'과 법적으로 확인된 사기 범죄를 구분해야 한다.

현재 공개된 보도만으로 그녀가 금전 사기나 인신매매, 기타 특정 범죄의 피해자였다고 단정할 근거는 충분하지 않다.

따라서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형사 사건으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금전 피해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해서 이 경험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공식적인 취업 경로가 없는 외국인 공연 종사자가 어떤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일자리를 찾는 사람에게 '내가 일을 소개해 주겠다'는 말은 큰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특히 현지 언어가 익숙하지 않고, 정식 매니지먼트 창구도 없으며, 누가 실제 결정권을 갖고 있는지 알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사적인 소개에 의존하기 쉽다.

그러나 정상적인 업무 제안이라면 협력 상대와 업무 내용, 보수, 일정 등이 분명해야 한다.

업무 소개가 점차 목적이 불분명한 사적 모임으로 바뀐다면 당사자는 그 관계를 다시 판단할 이유가 충분하다.

박선주는 자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들과 거리를 두기로 했다.

이것을 '고생 끝에 성공했다'는 낭만적인 이야기로만 소비해서는 안 된다.

외국인 노동자가 정식 일자리를 얻기 위해 불확실한 사교적 제안을 견뎌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다.

빠르게 성장하는 대만의 한국인 치어리더 시장에도 이 사례는 질문을 던진다.

더 많은 해외 인재가 대만에서 일하기를 원한다면, 보다 투명한 채용과 매니지먼트 체계가 필요하지 않을까?

박선주의 경험은 화려한 무대 뒤에 존재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7. 과이제에게 직접 보낸 편지, 스스로 기회의 문을 두드리다

오랜 기다림과 실망 끝에 박선주는 더 직접적인 행동을 선택했다.

그녀는 중신 브라더스 Passion Sisters의 매니저 과이제에게 직접 연락해 면담 기회를 요청했다.

2025년 7월 보도에 따르면, 그 메시지는 화려한 사업 제안서가 아니었다.

자신을 소개하고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지 물었다.

그 행동은 이후 그녀의 대만 경력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면담 당일, 그녀는 좋은 첫인상을 남기기 위해 외모와 옷차림에도 신경을 썼다.

대화에서는 대만을 좋아하는 마음, 혼자 생활하며 중국어를 배우는 과정, 그리고 오랫동안 일자리를 기다리며 느꼈던 감정을 이야기했다.

불편했던 업무 소개 경험도 털어놓았다.

과이제는 이후 박선주의 태도와 이야기에 마음이 움직였고, 팀에 합류할 기회를 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2025년 7월 24일, 중신 브라더스 Passion Sisters는 박선주와 김도아의 합류를 공식 발표했다.

박선주는 JJUBI라는 활동명을 사용하며 등번호 98번을 선택했다.

그날부터 그녀에게는 마침내 대만 프로야구의 정식 응원 무대가 생겼다.

하지만 이 과정을 '편지 한 통으로 취업에 성공했다'고 설명하면 그동안의 노력을 과소평가하게 된다.

면담을 의미 있게 만든 것은 이미 쌓아 온 직업 경험과 계약이 없는 상황에서도 계속해 온 준비였다.

그 편지가 갑자기 그녀의 능력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니다.

그저 자신의 경험과 능력을 실제 채용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에게 직접 보여줄 기회를 만든 것이다.

바로 이것이 박선주의 이야기를 일반적인 해외 치어리더 입단 뉴스와 구별한다.

그녀는 누군가 자신을 발견해 주기만 기다리지 않았다.

기회가 오지 않자 직접 문을 두드렸다.

8. 2026년 6월: 마침내 무대에 섰지만, 건강이 그녀를 멈춰 세웠다

2026년 6월, 박선주의 대만 생활에 예상하지 못한 건강 문제가 찾아왔다.

6월 초 그녀는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통해 몸이 좋지 않아 병원을 찾았고, 급성 충수염 진단을 받았다고 팬들에게 알렸다.

일반적으로 급성 맹장염이라고도 부르는 질환이다.

건강 상태는 춤을 추기 어려울 정도로 악화됐고, 결국 구단에 휴가를 요청해 응원 활동을 잠시 중단해야 했다.

더욱 아쉬운 것은 오랫동안 준비했던 개인 솔로 무대도 취소해야 했다는 점이다.

일반 관중에게는 치어리더 한 명이 건강 문제로 몇 경기 결장한 소식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박선주가 지난 1년 넘게 겪어 온 일을 생각하면 의미가 달라진다.

그녀는 구단 계약 없이 대만에 남기로 했다.

직접 중국어를 배우고, 일자리를 찾아다녔으며, 실망스러운 업무 소개도 경험했다.

결국 Passion Sisters 매니저에게 직접 연락해 정식 입단 기회를 얻었다.

이제 경기장에 익숙해지고, 팬들과 관계를 쌓으며, 자신의 개인 공연까지 준비하던 시점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건강 문제가 모든 일정을 멈춰 세웠다.

직업 공연자에게 몸은 단순한 일상의 일부가 아니다.

그것은 일을 지속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기도 하다.

예상하지 못한 질병 하나로 연습과 공연, 이미 계획된 일정이 모두 바뀔 수 있다.

낯선 나라에서 혼자 생활하는 사람이라면 의료진과의 의사소통, 생활 관리, 업무 중단에 따른 부담도 생각해야 한다.

다만 현재 확인 가능한 공개 보도는 급성 충수염 진단과 활동 중단, 개인 공연 취소를 주로 다루고 있다.

수술의 정확한 날짜와 병원, 구체적인 치료 과정까지 충분히 확인되지는 않았다.

따라서 추가 자료 없이 수술 경위나 당시 누가 그녀를 돌봤는지를 임의로 서술해서는 안 된다.

박선주는 당시 자신의 상태를 팬들에게 알리고, 솔로 무대를 보여주지 못하게 된 데 대해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하지만 질병은 공연자가 관객에게 사과해야 할 잘못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오랫동안 노력해 얻은 무대에서도 건강이라는 현실적인 한계를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갑작스러운 활동 중단은 그녀의 대만 이야기에 경기장의 박수와는 다른 장면을 더했다.

그녀는 무대에 설 수 있는 능력을 증명하는 것뿐 아니라, 무대에 설 수 없을 때 자신을 돌보는 일도 배워야 했다.

9. 2026년의 대만 생활: 이제 그녀에게도 일상이 생겼다

Passion Sisters에 정식 합류한 뒤 박선주는 점차 대만 생활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부담이 사라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2026년 9월 인터뷰에서 그녀는 여러 도시를 이동하며 응원 활동을 하는 일의 피로를 이야기했다.

며칠 동안 계속 일한 뒤 여행 가방을 끌고 숙소로 돌아올 때면 갑자기 슬퍼져 눈물이 날 때도 있다고 했다.

이 이야기는 경기장에서 보여주는 밝은 미소 뒤의 또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

관객이 보는 것은 대개 몇 분 동안의 공연이다.

하지만 그 무대 뒤에는 긴 연습과 이동, 준비 과정, 행사 일정이 있다.

외국인 구성원이라면 익숙한 환경을 떠나 혼자 생활해야 하는 부담도 더해진다.

박선주는 매니저와 스태프, 자신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어려운 시간을 견디는 데 도움을 줬다고 이야기했다.

Passion Sisters의 대만인 동료들과의 관계도 점차 업무 이상의 우정으로 발전했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동료 '쉬안(瑄)'과의 관계를 언급했다.

두 사람은 함께 짧은 영상을 촬영하고, 사적으로 시간을 보내며, 중국어로도 대화할 수 있게 됐다.

겉으로 보면 평범한 일상이다.

하지만 중국어가 익숙하지 않고 안정적인 직업도 없던 시절을 겪은 사람에게는 중요한 변화다.

그녀는 이제 단순히 대만에서 일하는 외국인 공연자가 아니다.

자신만의 생활 리듬과 인간관계, 일상적인 습관을 만들어 가고 있다.

진정한 문화 적응은 경기장에서 중국어 응원 구호를 외울 수 있게 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무대 밖에서도 독립적으로 생활하고, 마음을 나눌 사람이 생기는 것이다.

10. 2026년 10월, 그녀는 다시 관중석에 앉았다

2026년 10월, 중신 브라더스와 퉁이 라이온스는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에서 맞붙었다.

타이중 인터컨티넨털 야구장에서 열린 3차전과 4차전에서 JJUBI와 김도아는 관중석에 앉아 중신 브라더스를 응원했다.

10월 13일 대만 언론 보도에 따르면, 김도아는 4차전 이후 JJUBI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비로 대만에 와서 응원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보도에서 자비로 대만에 왔다고 명시된 사람은 김도아다.

이를 근거로 JJUBI도 같은 해외 이동 비용을 부담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두 사람이 관중석에서 응원하는 모습은 박선주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게 만든다.

2025년 2월, 박선주는 대만 프로야구 구단의 정식 치어리더가 아닌 상태에서 대만 대표팀 응원 현장에 있었다.

2026년 10월, 그녀는 이미 Passion Sisters의 일원이었지만 공식 응원 무대가 아닌 관중석에서 팀을 응원하고 있었다.

두 장면에서 그녀의 신분은 달랐다.

첫 번째는 대만에서 새로운 직업 기회를 찾던 한국인 치어리더였다.

두 번째는 이미 구단의 일원이 된 직업 치어리더였다.

이러한 변화는 소셜미디어 팔로어 수나 인기 순위보다 그녀의 지난 시간을 더 잘 설명한다.

그녀는 단순히 일자리 하나를 얻은 것이 아니다.

그 팀과 경기장, 그리고 팬들과의 관계를 조금씩 만들어 왔다.

11. 치어리더를 그만두더라도 대만에 남고 싶다

2026년 9월 인터뷰에서 박선주는 현재의 일보다 더 먼 미래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언젠가 치어리더 일을 그만두게 된다면 무엇을 하고 싶을까?

그녀는 그래도 대만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말했다.

유튜버가 되는 것도 생각해 봤고, 앞으로도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언젠가 음악 작품을 발표하고 싶다는 희망도 밝혔다.

이러한 목표는 아직 개인적인 구상 단계다.

확정된 연예 활동 계획이나 공식적인 음반 발매 일정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 말들은 중요한 사실을 보여준다.

대만은 이제 그녀에게 단기적인 해외 근무지만은 아니다.

2025년 구단의 제안을 받지 못했을 때도 그녀는 치어리더 일을 계속할 수 없더라도 대만에 남아 다른 기회를 찾고 싶어 했다.

2026년에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현재 모습을 '대기만성'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했다.

어쩌면 외부에서 붙여 주는 어떤 수식어보다 이 표현이 그녀의 이야기에 더 어울린다.

그녀는 대만에 도착하자마자 계약을 얻은 사람이 아니다.

기다렸고, 실망했고, 믿기 어려운 일자리 소개도 경험했다.

중국어를 배우고, 직접 기회를 찾은 끝에 정식으로 일하게 됐다.

그리고 마침내 무대에 섰을 때는 갑작스러운 건강 문제로 활동을 멈춰야 했다.

그녀의 경력은 처음부터 끝까지 순조롭게 이어진 성공담이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 다음 길을 찾으려 했다.

그래서 박선주의 이야기를 단순히 '인기 한국인 치어리더'라는 표현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그녀는 치어리더라는 현재의 직업에만 의존하지 않는 미래를 만들어 가고 있다.

12. JJUBI의 이야기가 대만의 한국인 치어리더 산업에 던지는 질문

최근 대만 프로야구에서 한국인 치어리더는 구단의 중요한 엔터테인먼트 및 마케팅 자원이 됐다.

이들은 언론의 관심을 끌고 새로운 관중을 유입시키며, 한국과 대만의 응원 문화가 교류하는 계기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동안 제도 역시 충분히 발전하고 있을까?

박선주의 경험은 이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이미 구단과 계약한 외국인 구성원에게는 일반적으로 비교적 명확한 업무 일정과 관리 창구가 있다.

그러나 계약을 얻지 못한 채 기회를 찾는 사람의 상황은 전혀 다를 수 있다.

어떤 제안이 진짜 일자리인지 판단해야 한다.

계약 조건과 자신의 권리를 이해해야 한다.

익숙하지 않은 언어 환경에서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

박선주가 겪은 불확실한 업무 소개는 비공식적인 인맥에 의존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보여준다.

결국 그녀가 직접 매니저에게 연락해 면담 기회를 얻은 일은 투명한 채용 경로의 중요성도 드러낸다.

또한 치어리더의 직업적 가치를 단기적인 화제성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이들은 여러 해 동안 춤을 연습하고, 다양한 스포츠 종목에서 공연한 경력을 갖고 있을 수 있다.

노래나 진행, 콘텐츠 제작 등 다른 분야로 활동을 확장하고 싶어 할 수도 있다.

건강과 노동 환경 역시 중요하다.

공연자가 질병으로 일을 멈춰야 할 때 적절한 지원과 회복 시간이 보장되는가?

외국인 구성원이 의료 문제나 생활상의 어려움을 겪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명확한 창구가 있는가?

이러한 문제는 치어리더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구단과 매니지먼트 회사, 산업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

대만이 한국인 응원 인재들이 장기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시장이 되기를 원한다면, 그들이 얼마나 많은 인기를 가져오는지만 볼 수는 없다.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일하며 생활할 수 있는지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결론: 기억해야 할 것은 그녀가 유니폼을 입기 전의 시간이다

지금 JJUBI라는 이름을 들으면 많은 팬들은 중신 브라더스의 노란 유니폼과 등번호 98번, Passion Sisters의 응원 무대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 기억한다면 그녀의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된다.

정식 입단하기 전부터 그녀는 이미 대만에 와 있었다.

누군가 일자리를 마련해 주기 전부터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구단 소속이 되기 전부터 야구장에서 응원했다.

기회를 기다리는 동안 실망했고, 믿기 어려운 사람들의 제안도 겪었다.

결국 직접 편지를 보내 자신에게 한 번의 면담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어렵게 얻은 무대에 서기 시작한 뒤에는 2026년 급성 충수염으로 활동을 중단해야 했다.

이러한 경험은 그녀의 이야기를 단순한 인기와 공연의 문제가 아닌 것으로 만든다.

선택과 기다림, 좌절과 건강의 한계, 그리고 낯선 나라에서 새로운 삶을 만드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다.

그녀의 직업 경력이 그 편지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편지는 한국에서 쌓아 온 응원 경험을 대만에서 이어 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2026년의 그녀는 중국어로 인터뷰를 이해하고, 동료들과 우정을 쌓으며, 치어리더 이후의 미래까지 생각하고 있다.

이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언젠가 음악이나 진행, 다른 공연 분야로 활동을 넓힐 수도 있다.

혹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야구장에서 팬들과 함께할 수도 있다.

지금은 누구도 그 답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든, 박선주는 이미 기록할 만한 시간을 지나왔다.

누군가 자신을 선택해 준 뒤에야 대만에서의 삶을 시작한 것이 아니다.

아직 누구에게서도 확실한 답을 듣지 못했을 때, 그녀는 먼저 대만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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